대전에 갈 곳이 없다고???

[대전 팸투어] 듣고 보니 다시 보인다. -보문산과 대전의 역사

꽃수수 2020. 11. 15. 22:32

직장 동료들과 특별 체험에 나섰다.

문화관광 해설사와 함께하는 보문산 팸투어.

대전에 자리한 여러 산들 중 정말 보물산이라고 여겼던 보문산인데 여러 가지 여건상 등산을 못하게 되면서

점점 멀어지게 된 산이다.

 

대전역 광장에 '을유해방기념비(乙酉解放記念碑)'가 세워져 있다.

이 해방비는 1946년 광복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전시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됐다. [사진=대전시]

이 자료는 얼마 전 시가 확보한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NARA) 소장 영상에 포함된 것으로,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라지기 전의 대전역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뉴스핌에서 펌]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찍은 대전역이라는데 을유해방기념비옆에 해태상이 어렴풋이 보인다.

 

을유해방기념비를 감싸고 있던 대전역의 해태상은 대전시에서 국립 현충원에(서울) 기증하여 현재에까지 이른다고.

을유년에(1945년) 광복을 맞아 전국적으로 기념비를 많이 세웠다고 한다.

대전에선 유성초에 기념비가 하나 더 있고 세동(상세동)에는 느티나무를 심어 해방을 기념하여  비 2개와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이 기념비의 특징은 한글로 비를 만들었고 당시 대전시가 아닌 대전부에 속해 있었기에 대전 부민 일동으로 되었단다.

뜻이 있는 부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기쁨이 컸던 만큼 새겨진 글씨의 깊이가 꽤나 깊다고.

 

보문산 자연 동굴인데 예전엔 천연 동굴로 물이 깊어 뗏목도 띄울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천연 동굴을 이용하여 동굴형 아쿠아리움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 위의 자연 동굴은 위장 도색을 하여 군사시설로 이용이 되었다고 하는데

전기 시설은 물론 회의실, 침실까지 있었단다.

영화 아이리스 촬영지이기도 하고.

 

1962년에 세워져 보문산에서 가장 오래된 보문산비란다.

 

한때 나를 포함한 대전시민들이 애용하던 케이블카가 철거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나도 애들이 어릴 적에 한두 번 이용한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이렇게 대전과 보문산의 역사를 들으며 오르다 보니 이런 시설물이 나오는데 보문산의 유래가 적혀 있었다.

 

보문산은 보물이 묻혀있다 하여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옛날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착한 나무꾼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그 소문이 이웃 마을까지 퍼져 있다.

그런데 이 나무꾼에게는 술만 먹고 주정을 일삼는 형이 하나 있어 부모와 동생을 몹시 괴롭혔다.

어느 날 나무꾼은 나무를 한 짐 해가지고 내려오는 길에 조그마한 옹달샘 옆에서 쉬게 되었다.

그때 샘 옆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꾼은 물고기를 샘 물속에 넣어 주었고, 물고기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 사라졌다.

 

조금 후에 눈을 돌려 보니 물고기가 놓여 있던 곳에 하나의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주머니를 집어보니 그곳에 '은혜를 갚는 주머니'라고 적혀 있었다.

신기해서 나무꾼은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 동전 하나를 넣었더니,

순식간에 주머니에 동전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무꾼은 큰 부자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 형이 그 보물주머니를 빼앗을 욕심으로 동생에게 주머니를 한 번만 보여 달라고 했다.

착한 동생이 주머니를 형에게 보여주자 형은 주머니를 가지고 도망치려고 했다.

동생이 알아차리고 형을 쫒아 주머니를 도로 찾으려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주머니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형이 주머니를 발로 짓밟는 통에 그 주머니 안에 흙이 들어갔다.

그러자 주머니에 흙이 걷잡을 수 없이 계속 쏟아져 나와 쌓이고 쌓이게 되었다.

이렇게 쌓인 흙이 드디어 큰 산을 이루니, 그 산속에 보물주머니가 묻혀 있다 하여 보물산이라 하였고,

그 후 보문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 내용을 중국인 문화해설사 지망생이 더듬더듬 한국말로 해설을 하는데 어쩌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해주는지 깜짝 놀랐다. 물론 말 속도가 느려 답답하긴 하였지만 그녀에게 한국말은 어쨌든 외국어 아닌가.

 

주머니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엽전 엽전들.

저런 주머니 하나 가지면 행복하려나?

 

보문산엔 단풍이 한창이었다.

 

평상시엔 무심코 지나쳤던 곳인데 해설사가 들려주는 내용이 새로워 이 장소가 새로이 보이더라는.

 

주차장도 만들어져 있다.

 

일본인 사업가가 살던 집이라는데 일본인임에도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였는데

그 따님 되시는 분이 어려서 나고 자란 대전과 보문산을 너무나 사랑하였고 을유년이 지나고 일본으로 귀향하였는데

보문산을 너무나 그리워하다가 팔십이 넘은 나이에 이곳을 방문하여 그대로 남아있던 집에 고마움과 그리움을 표하였고

죽어 유골의 일부가 이곳에 묻히기를 소망하여 유언대로 그리 되었다는 내용의 해설을 들은 거 같다.

지금은 보수 공사 중이었다.

 

대전역에 있던 을유해방 기념비가 이곳으로 옮겨져 있다.

한국 전쟁 시 수많은 기념비들이 총탄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였지만 이 기념비만은 한 발의 총탄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해방의 기쁨은 남북을 가리지 않았다는 말로 해석이 되는 부분이라고.

 

명상 교육장도 만들어져 있다.

 

행복 숲길 입구

 

전망대 모습

 

엄청나게 큰 양버즘나무의 위엄이 셔터를 누르게 한다

 

그 아래 갈라진 틈으로 새 생명이 태어나고...

 

전망대에서 보이는 대전시 전경.

바로 아래가 야구장이 있는데 전망대에서 무료로 즐기는 야구 경기 모습이 꽤나 스릴이 있었다고.

아마도 공짜 구경이라 그런 건 아니었을까? ㅋㅋ

 

전망대 벽에 ㅠㅠ...

 

해설사님이 준비해 오신 간식 과일과 손재주 좋으신 일행분이 양버즘나무 잎으로 만든 나뭇잎 꽃

 

보문산 유래가 담긴 목걸이도 만들었다.

유래에 나오는 물고기는 지금의 미호종개라고 한다.

실상은 도자기로 이미 만들어진 곳에 끈만 묶어 만들었다는 ㅋㅋ

 

목재 체험관 전경.

 

점심으로 이렇게 맛난 음식도 대접받았고.

 

얼른 돌아서 가잣~~!!

 

 

맛있는 차까지 대접받은 행복한 팸투어.

고맙습니다~!!